리버사이드에서 재즈 기타리스트로서 명성을 얻은 그는, 버브로 이적하여 프로듀서 크리드 테일러를 만난다. 테일러와 함께 낸 앨범들은 팝 스타일을 접목함으로써 몽고메리에게 상업적인 성공을 안겨주었다.
악기의 특성 탓에 기타는 큰 소리를 낼 수 없고 밴드 내 위상도 크지 않았지만, 앰프로 소리를 증폭하면서 솔로 악기로 위상이 바뀌었다. 재즈 역사에서 레전드로 남은 솔로 연주 다섯을 꼽아 보았다.
컨템퍼러리 음반사는 각종 전문가 투표에서 톱을 차지한 연주자 셋을 모아 <Poll Winners>란 제목의 앨범을 냈다. 모두 다섯 장으로 이어진 시리즈는 재즈 기타 트리오의 클래식으로 평가된다.
로니 조던은 자신의 음악을 재즈와 힙합, 그리고 알앤비가 섞인 어번 재즈라 불렀다. 음반 회사들이 거절한 그의 음악은, 런던 클럽 DJ들의 플레이리스트에 올랐다. 그는 애시드 재즈 기타리스트로 주목받으며 미국에 진출했으나 건강이 그의 앞을 가로막았다.
그는 기타리스트로 재즈신에 등장했으나 노래에 대한 열정이 있었다. 이를 달갑게 여기지 않은 프로듀서를 교체하면서 1976년 앨범 <Breezing’>에 노래 한 곡을 삽입했고, 곧 그는 크로스오버 스타로 발돋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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